기사제목 수원미술, 그 길에 서다 - 낡은 건물에서 '휴먼'을 그려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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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미술, 그 길에 서다 - 낡은 건물에서 '휴먼'을 그려내다

행궁동레지던시 구도심속 공존 모색... 신진작가 지원의 신모델 추앙
기사입력 2015.05.06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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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넉한 팔달산. 이곳에 수원화성의 중심지가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할 일이다. 수원시민의 사랑을 듬뿍 받는 곳이기도 하다. 장터가 있었다는 그 길을 따라 왼편으로 보든, 오른편으로 보든 아름답기 그지없는 공간이다. 이 공간의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나올까?

화성의 주요 성문들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던 수원시의 주요 마을들은 그 오랜 역사와 삶의 내음을 이제는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수원미술의 공간성과 시간성은 최근 10여 년 동안 인구 120만 도시로 성장하는 회색빛 도시의 무지막지한 발걸음의 옆자리에서 물과 기름처럼 힘겨운 공존을 모색해왔다.

거대한 개발사업들이 수원의 옛 모습들을 하나하나 잠식하고 몇 남지 않은 자연의 모습이 콘크리트 건물 속에서 신음하며 사라지고 그 생명을 다하고 있다.

새로운 시민들이 조그만 시골도시 수원시의 20만 인구를 넘어 주류로 자리 잡으며 옛 시골의 모습에 대한 거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예전의 수원은 낡음의 상징이고 이제 기억에서 내 눈앞에서 밀어내고 싶어진다.

환경도시라 자부하지만 예전부터 늘어나던 작은 녹지들은 삽질 한 번에 순식간에 사라진다. 녹지축을 절단하는 도로가 산의 생명력을 갉아먹고 있지만 연기에 대한 두려움만을 우리는 인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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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새재생이라는 이름 속에서 수원의 과거 자취는 생명을 다하고 있지만 거대한 기계적 건설사업을 통해서 도시구조를 재편하겠다는 힘찬 시동 소리에 사람과 사람으로 전해지는 문화의 이름은 허울 뿐이 남지 않았다.

수원의 문화적 위기는 지난 몇년 동안 계속되어 왔다. 개량이 아닌 신규 개발을 통한 도시구조 재편이 주류 이론으로 자리잡으면서 과거는 수원의 정체성에서 기인한 사상이 아닌 새로운 것, 바로 콘크리트만이 이 도시를 살릴 수 있다는 생각이 팽배하다. 그리고 위험하다.

수원미술의 위기는 바로 공존이 아닌 창조를 통한 도시의 주인공이 되려하는 인간의 오만에서 비롯됐는지 모른다. 수원화성 주민을 지원한다고 하지만 이 지원에는 알맹이가 빠져있는 느낌이다.

수원화성 인근 주민들은 그곳을 정말 떠나고 싶어할까. 수십년 인생이 담긴 이야기가 하천을 따라흐르지만 우리는 그것을 인정하고 있는 것일까?

수원미술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개발과 공존에 대한 고민이다. 어떻게 이곳에서 살아왔고 또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는 지근거리에서 밖에 볼 수 없다.

지역미술이 사람들 속으로 들어오고 지역미술이 사람들과 호흡할 수 있다는 실험은 신진작가에 대한 공공의 지원, 공간적 확보를 통해서 동일 공간 속에서, 시간도 함께 할 수 있음을 증명해내면서 삶과 미술이 하나가 되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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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이 조금 넘은 시절. 기자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중에 하나이다. 몰래 계단을 오르면서 눈을 감고 숨을 들이쉰다. 무언가 에너지가 넘친다.

문화재도 아닌 이 낡은 공간에서 어떻게 이런 편안하고 낭만적인, 그리고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기운을 함께 할 수 있게 해주는지 신기하다. 초라한 현관 대문은 대체로 열려있고 몰래 누군가의 작업실을 훔쳐보는 일도 가능하다.

보통의 레지던시라면 도시와는 궤를 달리한다. 수원에서 이런 레지던시를 만든다면 지역의 명산인 광교산이나 칠보산이 어울렸을 수도 있다. 작품에 집중하기 위해서 그렇다. 그런데 왜 행궁동레지던지는 이 공간으로 파고들었을지 항상 궁금했다.

행궁동레지던시는 세계문화유산의 중심지인 팔달문과 가깝고 시장통 들이 즐비한 끝에 놓이게 됐다. 화성행궁의 옆자리에 위치해 있으며 수원시립미술관 부지의 한끝에 자리하고 있었다. 신풍초등학교와도 참으로 잘 어울린다.

예술적 가치를 지녔다기 보다는 L자형 건물은 삶의 빡빡함이 묻어있는 부지의 한계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오랜 시간이 지나 그 풍성한 건축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하게 되다니 삶은 참으로 난해하기 그지없다.

과거형인 이유는 이 행궁동레지던시가 6기 입주작가의 활동을 마치고 이전한다. 그리고 이 건물은 철거가 예정되어 있다. 공간적으로는 새로운 거대한 콘크리트 미술관의 옆자리에서 쫓겨나야 할 입장이지만 신풍동 등 인근마을과의어우러지는 미학적 아름다움을 지닌 건물이 헐린다니 아쉬울 수밖에 없다.

건물이 아름다운 이유는 건축학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기 때문이 아니라 그 건축물이 그 마을과 어우러져온 세월로 인해 스스로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서구의 오랜 마을이 자랑스럽게 그 아름다움을 뽐낸다면 우리는 그 공간을 전통마을이라는 이름으로 묶어버린다.

이 건물의 주인은 수원시 화성사업소다. 사업소의 부지라면 주인은 수원시가 된다고 보면 될듯. 시민들은 이 건물의 가치를 논하면서 주인이 수원시라는데에 두가지 편견을 지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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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수원시 건물이야. 그렇게 안보이네", "웬일이야. 별일도 다 보겠네"로 말이다. 그만큼 이질적으로 보이는 이 공간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관광객이 그만큼 많다는 것은 무언가 색다른게 담겨졌기에 가능하다. 우린 "오! 신선한데"라고 감탄한다.

최근 지자체들은 다양한 문화자원 확대를 위해 전통문화, 클래식, 미술 등의 콘텐츠 확보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에 반해 수원의 경우 역사문화유적을 제외한 새로운 문화창출에 답보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문화적 가치 평가와 그 산업적인 가이드라인을 만드는데 노하우를 쌓는데 게을렀기에 항상 급하고 서둘러야 한다. 사안이 있을 때마다 말이다. 그동안 문화산업 대부분을 '사적 공간'에 의존하여왔으며 지자체 정책의 연속성과 추진력은 의심의 눈초리를 받아야 했다.

지역문화와 정책의 이질성에 대해서는 다른 시리즈로 살펴봐야 겠지만 수원미술의 정책 기조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예산 지원은 하되 직접적으로 관여는 하지 않는다'로 압축할 수 있다. 1900년대 초 미국의 쇄국정책을 닮은 그것이 원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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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미술의 공공성은 공간성은 지자체가 담당하고 문화적 활동과 예술적 활동은 미술인들의 참여를 통해 채워지는 다소 복잡한 구조로 이뤄져있다. 이 복잡한 구성에는 지역미술인들의 수십 년의 노력과 공이 녹아있다. 그 성과물은 시민들이 영위하지만 공은 수원시가 가질 수 없게 되어있다.

이 모델은 다른 문화 산업 전반에도 비슷한 취지로 적용되게 된다. 이 부분에서 누가 더 전문적이며 수원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느냐에 대한 평가시스템의 부재 또한 고스란히 드러난다.

도시의 성장에 비해 그동안 시정의 기조는 수십 년 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 120만 도시에 어울리는 콘텐츠의 확보가 발등의 불이 되자 신규 사업을 찾고 새로이 기구를 만들고, 신축건물을 양산하고, 이런저런 축제를 양산한다.

다행히도 미술의 경우 이 세포분열에서 일정거리 이상 제외되며 자생적 구조를 만들어오고 있었다는 것이 흥미롭다.

수원미술은 공공미술전시관을 통한 전문 미술인과 아마추어의 전시 공간 활성화, 체험미술을 통한 저변 확대, 미술인의 창조적 도시재생, 소규모 갤러리를 통한 시장의 태동 등의 긍정적인 부분들을 열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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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성과물은 시가 공간적인 측면에서 지원을 한 덕분이기도 하지만 상당부분이 미술인들의 노력에 기인하고 있다. 때로는 사적영영의 성과물이 공공영역의 그것보다 높은 가치를 인정받으며 수원을 알리는 전도사가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빈번하다.

하지만 그 성과물은 공공의 영역이든 사적 영역이든 수원시민이 향유하며 수원시를 알리는 문화콘텐츠가 되고 있다데는 이견을 달 필요는 없다.

무언가를 선도하고 있다고 하면 그 사업의 창조성과 함께 그 콘텐츠의 문화적 가치 또한 전국적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그리고 토착 문화의 새로운 발전상을 기획했다는 참신성이 뒷받침돼야 한다.

이는 전문가 집단의 오랜 고민과 함께 참여를 동반해야 가능한 일이다. 수원지역은 이 전문가 집단에 대한 관청의 의존도가 높은데 비해서는 토착 문화에 대한 이해와는 거리가 생기는 기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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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말 행궁동레지던시를 찾았다. L자 구조의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현관에서 왼편으로 보면 종로거리가 보이고 오른편에는 화성행궁의 늠름한 모습이 그려진다.

수원의 랜드마크인 팔달산의 너머로 서서히 석양이 비추기 시작한다. 오전에 찾지 않고 오후에 이곳을 찾은 것은 이곳이 곧 사라질 운명이기 때문이다.

20여명이 넘는 작가가 입주해있는 행궁동레지던시. 아무렇지 않은 듯 작가 한명이 전시실을 넘어 자신의 작업실로 들어선다. '어찌 저리 태평할까?'라는 의문부호가 잠시 머리에 스치고 지나갔다.

행궁동레지던시는 수원시의 유휴공간을 활용해 마을 활성화를 유도하기 위해 예술가들을 불러들이고 마을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공동창작공간을 운영하며 다양한 프로그램을 함께 추진하여 슬럼화 되어가는 구도심에 생기를 되찾기 위해 추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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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9년 당시 행궁동 주민을 비롯, 대안공간 눈, KYC, 수원의제21 등이 제안했고 행궁동역사문화만들기 레지던시프로그램이 그 스타트를 알렸다.

이곳에는 시의 지원으로 나혜석자화성 타일벽화설치, 공간칸막이 설치, 전시실, 지하소극장 등이 들어서게 되며 마을 중심의 문화공간으로 자리하며 재생의 진면목을 깨닫게 해주는 사업이 됐다.

이윤숙 총감독 당시에 "지자체의 유휴공간을 활용한 저예산 고효율 공동창작 공간 조성의 성공사례로 꼽히는 행궁동레지던시는 전국 유일의 주민제안이라는데 의의가 크다"며 "젊고 실험적인 다양한 장르의 작가들이 뜨거운 작품활동을 벌이고 이 과정에서 지속적인 탐방객들이 찾으며 수원을 알리는 도우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행궁동레지던시는 지난 2001년 마을속 미술관인 대안공간 눈, 행궁동벽화골목과 하나의 창조물로서 대한민국공간문화대상을 수상하면서 수원시의 자랑스런 공간으로 각광받고 있다.

행궁동 레지던시 1기 입주작가는 모두 38명. 이들은 지난 2009년 6월27일 입주를 시작해 제1회 나혜석생가거리미술제 '붉은 꽃 피고 지고... 다시 피다'를 진행했고 아르헨티나, 일본 작가와의 교류에도 나섰다.

2기 작가는 43명에 이르며 오픈스튜디오 '주민과 만나는 상상마당'을 시작으로 작품활동에 들어가 제2회 나혜석생가거리 미술제를 통해 얼굴을 알렸고 이웃과 공감하는 예술프로젝트 행궁동사람들이 참여한 벽화작업을 진행했다.

3기 작가는 모두 25명 규모로 꾸려졌으며 수원문화 360을 열고 '행궁동 보물찾기 - 작당프로젝트팀'이 구성돼 행궁광장 펜스에 문화지도 그리기 작업을 진행했다. 이들은 신풍초교 미술 수업을 통해 저소득층 자녀의 특별수업을 담당하기도 했다.

4기 작가는 26명의 팀으로 이뤄진 가운데 행궁동 주민과 수원시민을 위한 한국화 무료강좌를 진행했고 어린이와 행궁동 주민을 위한 교육예술 인형극을 무대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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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기 작가는 27명으로 구성됐으며 생태교통수원2013의 '이야기가 있는 옛길 안녕하세요' 등의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등 행사의 성공에 일조하며 눈길을 끌었다.

행궁동 레지던시의 마지막 주인공인 6기 작가는 모두 28명. 이들은 생생인문학당에 참여하고 생태교통마을 벽화, 쌈지공원 조형물 제작에 나서기도 했다.

무엇보다 국제협업아트프로젝트인 '신화와 예술맥놀이'는 많은 시미들이 참여하며 성황을 이뤘고 생태교통마을문화네트워크에 동참하기도 했다.

수원화성 광장을 지나 화성행궁 옆을 지나 건물로 들어섰다. 신풍초등학교가 옛날의 기억을 되살린다. 그리고 기념촬영을 해본다. 언젠가는 사라질 운영의 그 건물을 말이다. 그리고 기억에 담는다.

현재 행궁동레지던시 1층 전시실에서는 이별전의 흔적이 남아있다. 떠남에 있어서는 '쿨'해야 할 젊은 작가들이 이별을 아쉬워하며 새 출발을 다짐하고 있다.

이들 작가들이 이별을 하는 이유는 수원시가 이 자리에 역사공원을 세우기로 했기에 그렇다. 지난 3월28일 입주작가들은 마지막 전시공연 '철거프로젝트 : 간다!!家'를 열었다.

앞으로 7기 입주작가들은 팔달문 근처에 자리한 남지 터 복원 부지로 가게 된다. 이 건물도 언젠가는 철거돼 남지의 모습만 남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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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의 전시실에 알록달록 달려진 풍선과 조명을 보면서 처절함이 다가선다. 한걸음 한걸음 정들었던 계단을 올라서며 벽을 타고 흐르는 작가열이 가슴으로 전해진다.

3층에서 잠시 망설여졌다. 내일 떠날지 오늘 쫓겨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너무도 고요하고 작가들의 방은 하나하나 숨을 쉬고 있었다.

어느 새 태양이 팔달산 자락으로 사라졌다. 갑자기 혼자 노래를 부르게 된다. 가슴에서 쏟아져나오는 많은 노랫가락을 셈하면서 '왜이리도 슬픔 노래가 많은가?'라고 자문한다.

행궁동레지던시는 실험적이면서 성공적이었다. 미술의 영역과 삶의 영역은 이분법적으로 분리해낼 수 없다. 명작들이 모두 삶의 고뇌, 사람을 통해서 나왔다는데 이견이 필요할까 싶다.

지역미술의 발전은 다양한 측면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미술을 지자체의 문화적 영역으로 볼 것인지 공간적 측면에서 볼지, 성장가능한지에 대한 고민을 하기도 전에 지역미술은 그 숨을 다하고 있는지 모른다.

갑갑한 회색빛의 세상 속에서 미술은 바람을 타고 사람들의 손을 거쳐 마음으로 다가서야 한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 후손들이 그 가치를 알아보게 되어있다. 우리는 이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편 지난 2013년부터 2014년까지 2년 동안 행궁동예술마을만들기의 탐방객 수는 모두 302팀 8천680명에 달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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