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세월호, 신뢰, 연대, 그리고 복지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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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신뢰, 연대, 그리고 복지국가

기사입력 2015.04.20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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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9494391_4327d9bdffadad553d5cac04c2b144aa_M.jpg장지연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사회학 박사)
오늘이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참담한 날이라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조금만 더 힘을 쏟으면 복지국가에 손닿을 듯 했던 그 간절했던 마음은 도대체 무슨 근거로 어디에서 나왔던 것인지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어.. 어.. 하는 사이에 우리는 참으로 멀리 떠내려 와 버렸다.
 
복지국가를 가능하게 하는 것 두 가지
 
복지국가를 가능하게 하는 게 무엇인지 딱 두 개만 꼽으라면, 첫째는 구성원들 간의 연대(Solidarity)이며, 둘째는 이를 보장하는 국가에 대한 신뢰라고 나는 주저 없이 대답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정반대 편에 있는 모습은 잔인하게 갈갈이 찢긴 사회와 믿을 수 없는 무책임한 국가일 텐데, 우리는 지금 딱 그런 국가의 모습을 목도하고 있다.
 
세월호는 많은 사람들에게 슬픔 그 이상이다. 피어보지도 못하고 진 꽃봉오리를 보는 안쓰러움, 자식을 가슴에 묻은 부모에게 건네고 싶은 위로, 시간과 능력이 있었는데도 구하지 못한 공권력에 대한 원망... 이런 감정들은 지금 우리가 맞닥뜨린 비극의 본질을 충분히 드러내지 못한다.
 
죽음은 인간의 운명이지만 안전 불감증이 사고를 불렀으니 원인을 제대로 진단하고 시스템을 정비하자. 뭐 이런 논의들도 당연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이건 너무나 건조하게 사건을 포장하는 방식이다.
 
실은 감히 입 밖에 내어 말하지 못하고, 차마 머릿속에 상상하기도 싫은 공포. 그 트라우마가 이 비극의 본질이다. 밀폐된 공간에서 친구들 손잡고 구조를 기다리던 아이들 가슴까지 물이 차올랐을 그 순간에 자꾸만 내 자신을 갖다 놓게 되는 사람들이 오늘도 숨죽여 눈물 흘리는 것이며, 두 눈 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부모의 심정에 감정이입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들이 광화문 광장으로 나가게 되는 것이다.
 
심리학에는 문외한이지만, 짐작컨대, 이러한 눈물은 다 내가 살기 위해 내 몸이 반응한 결과가 아닐까싶다. 손잡고 펑펑 울어야 그 공포를 이길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가족, 그리고 그들의 손을 붙들고 함께 우는 사람들에게 우리들의 국가는 물대포와 최루탄으로 응답한다. 왜? 악쓰면서 울었다고. 조용히 눈물로 애도하고 보상할 것은 보상하면 될 일이지, 길거리에 나와 앉아서 땅을 치며 통곡하는 것은 사건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국가를 장악한 사람들의 사고 구조인 것이다.
서로서로 보듬고, 지쳐서 눈물이 마를 때까지 함께 통곡해야만 당신도 살고 나도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하지 말란다. 잡은 손 놓고 각자 돌아가서 생업에 종사해야 경제가 산단다. 그래서 이 영화는 비극이 아니라 피해자를 처참하게 한 번 더 죽이는 잔혹 영화가 되었다.
 
국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대한민국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 대한 인간적인 동정, 그리고 언젠가 내 자신이나 자식들에게도 그런 어려움이 닥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합리적 이성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면 ‘연대’가 이루어진다. ‘자선’은 고귀한 인품의 표식이지만, ‘연대’는 불순한 자들의 세력화라고 믿는 이들이 복지국가가 무엇인지 알 리가 없다. 아마도 우리 대통령이 말한 ‘내 아버지가 꿈꾸던 복지국가’란 가난한 사람을 돕는 제도가 잘 정비된 나라 정도가 아닐까 싶다.
 
‘연대’는 힘과 돈의 축적을 필요로 하고, 이것들을 위임받아 관리하는 국가가 복지국가이다. 국가가 내 차례를 호명할 때 나가서 노동력을 제공하고, 기꺼이 세금을 내서 연대를 실현하겠다는 마음은 그 관리자로서의 국가에 대한 신뢰가 없이는 생겨날 수 없다.
 
소위 ‘사자방(4대강, 자원외교, 방위산업)’에 관한 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국가에 대한 신뢰는 조금씩 더 망가져 왔지만, 최근 자살한 정치인이자 기업가가 폭로한 정치권력의 민낯은 그나마 남아있던 국가에 대한 쥐꼬리만한 믿음마저도 무너뜨려버리기에 충분했다. 경남기업이라는 별로 귀에 익지도 않은 기업이 정치권력과 맺고 있는 관계가 이러할진대, 다른 한다하는 기업들과 정치권력의 관계는 오죽할 것인가?
 
나라의 운명을 좌지우지할만한 범죄의 피의자에게 국정의 최고책임을 맡겨놓고 경제 세일즈 외교가 중요하다며 자리를 비우는 대통령을 보면서 국가에 대한 망가진 신뢰를 다시 일으켜 세울 조그만 힘도 우리에게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우리는 선거를 통해서 현 집권세력에게 권력을 위임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정권도 그리 생각하겠는가?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경남도민이 위임한 권력으로 경남도민이 낸 세금을 관리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면, 이리도 오만한 대권 행보를 할 수 있었겠는가? 이들이 ‘정치’를 할 수 있도록 돈을 대준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정권을 잡아 그들의 수익구조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의식으로 행동하는 것이 당연하다.
 
사회적 위험에 공동으로 대응하는 ‘복지국가’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고 또 보면서, 우리는 기꺼이 세금을 낼 터이니 사회적 위험에 공동으로 대응하는 국가체계를 만들어 달라는 신뢰는 여지없이 무너진다. 복지국가를 향해 한걸음 다가갔다가 열 걸음 다시 뒤로 멀어진 느낌. 이런 느낌이 필자만의 느낌은 아니리라. 
 
어디서부터 잘못을 바로잡아 나갈 수 있을까? 너무나 깊은 바닥까지 추락한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자니, 오늘은 희망의 메시지가 떠오르지 않는다.
 
오늘은 그냥 울어야하는 날이 아닐까싶다. 쉽게 추스르고 힘내서 다시 일어날 시간이 지금은 아닌 것 같다. 배 안에 남겨진 소녀, 친구들과 부둥켜안고 울었을 그 소녀와 함께 그냥 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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