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3.1운동 세계에 알린 '앨버트 테일러와 딜쿠샤' 유물 최초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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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세계에 알린 '앨버트 테일러와 딜쿠샤' 유물 최초 공개

서울역사박물관, 기증유물특별전 「딜쿠샤와 호박목걸이 展」 11.22.~'19.3.10.
기사입력 2018.11.22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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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버트 테일러의 손녀 제니퍼 L. 테일러 기증유물 총 1,026점 중 310점 첫 공개
고종 국장행렬 사진, 부인 메리 테일러의 자서전 초고, 당시 딜쿠샤 모습 사진앨범 등
3.1운동, 제암리 학살사건 취재 실린 당시 신문기사, 벽난로 등 딜쿠샤 내부도 재현
고종국장.jpg▲ 고종국장 행렬-앨버트 테일러가 고종국장을 취재하면서 촬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뉴스앤뉴스 주윤기자]= 1919년 3.1운동과 수원 제암리 학살사건을 취재, 당시 조선에 대한 일본의 무단통치 실상과 우리 민족의 평화적‧비폭력 저항운동을 전 세계에 알린 미국 AP통신사 임시특파원 앨버트 와일더 테일러(Albert Wilder Talyor). 고종황제의 국장행렬 사진 등 그가 남긴 유품과 앨버트-메리 테일러 부부가 서울에 짓고 살았던 가옥 ‘딜쿠샤’의 당시 모습이 담긴 사진앨범, 또 부인 메리 린리 테일러(Mary Linley Talyor)가 미국으로 돌아간 뒤 한국생활을 중심으로 집필한 자서전 <호박목걸이(Chain of Amber)>의 초고 등 테일러 가문의 자료가 최초로 공개된다.

딜쿠샤(Dilkusha, 서울 종로구 사직로2길 17)는 앨버트 테일러가 1923년 건축해 1942년 일제에 의해 미국으로 추방될 때까지 약 20년 간 아내와 함께 거주했던 집이다. 영국과 미국의 주택양식이 절충된 형태로 일제 강점기 근대건축의 발달양상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시는 딜쿠샤를 원형 복원해 시민에게 전면개방할 계획으로, 현재 복원작업을 위한 본공사를 앞두고 있는 가운데 관련 유물을 우선 공개한다.
 
서울역사박물관(관장 송인호)은 기증유물특별전 「딜쿠샤와 호박목걸이 展」을 11.22.(목) 15시 개막식을 시작으로 내년 3.10.(일)까지 1층 기획전시실B에서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를 통해 앨버트 테일러의 손녀인 제니퍼 린리 테일러(Jennifer Linley Taylor)가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한 딜쿠샤 및 테일러 가문 자료 총 1,026점 중 310점이 선보이게 된다. 제니퍼 L. 테일러는 22일(목) 개막식에도 참석할 예정이다.

테일러 부부가 1917년~1942년 서울(경성)에서 살며 남긴 다양한 자료들을 통해 딜쿠샤의 당시 모습과 이들의 행적을 되짚어보는 시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제니퍼 L. 테일러는 2016년 3월 딜쿠샤 관련 자료 30여 점을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한 것을 시작으로 2018년 3월까지 총 1,026점을 기증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이 자료들을 토대로 딜쿠샤 복원 및 이번 전시에 관한 조사를 진행했으며, 이번 전시를 통해 그간의 연구성과를 처음으로 시민에게 공개하고자 한다.

기증유물뿐 아니라 앨버트 테일러가 취재한 3.1운동과 제암리 학살사건에 대한 기사가 실린 1919년 당시 신문기사(뉴욕타임즈와 더 재팬 어드버타이저)도 첫 공개된다. 또, 테일러 부부가 딜쿠샤에 거주할 당시에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진 1층 벽난로와 창문도 당시 사진과 기록물을 토대로 전시장 내부에 재현된다.
 
전시는 총 4개 주제로 구성된다. ①테일러 가문 유물 기증 ②테일러 부부의 서울생활(1917~1922) ③기쁜 마음의 궁전, 딜쿠샤(1923~1942) ④일제에 의한 강제추방(1942~1948)이다.
 
① 1부 테일러 가문 유물 기증
제니퍼 L. 테일러가 서울역사박물관에 자료들을 기증하게 된 경위와 엘버트 테일러와 메리 테일러라는 인물에 대한 상세 설명, 그리고 메리 테일러의 자서전 <호박목걸이>를 소개한다. 2016년~2018년 제니퍼 L. 테일러가 기증한 자료들은 음첨골과 고종국장 사진, 메리 테일러가 그린 한국 사람들, 딜쿠샤에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공예품 등이다. 이 자료들을 통해 딜쿠샤와 테일러 부부의 행적을 파악할 수 있게 됐다.

앨버트 테일러와 메리 테일러 소개 : 앨버트 테일러는 1875년 3월 미국 네바다 주 출생으로 아버지의 금광사업을 돕기 위해 1897년에 조선에 처음으로 왔다. 그는 1917년에 영국인 연극배우 메리 테일러와 결혼했고, 조선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하였다. 1919년 AP통신사 임시 특파원이었던 앨버트 테일러는 3.1운동 재판과정과 제암리 학살사건을 취재해 전 세계에 알리기도 했다. 1942년 태평양 전쟁 발발로 테일러 부부는 미국으로 추방되었고, 1948년 앨버트 테일러는 73세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메리 테일러는 1889년 생으로 결혼 전 이름은 힐다 무아트 빅스(Hilda Mouat-Biggs)였다. 그녀는 조선에서 생활하는 동안 서양인 사교단체인 ‘유니온 클럽’에서 연극공연 및 연기 교습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1948년 앨버트 테일러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유언에 따라 양화진 서울외국인 묘원에 유해를 안장했다. 그 후 그녀는 미국으로 돌아가 1982년 생을 마쳤다.

호박목걸이 : 메리 테일러는 미국으로 돌아간 후 1917년~1942년 한국에서의 생활을 중심으로 한 자서전 <호박목걸이(Chain of Amber)>를 집필했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호박목걸이’는 메리 테일러가 앨버트 테일러에게 결혼 선물로 받은 것으로 책의 모든 내용은 호박목걸이를 통해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상징성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에는 일제강점기 당시 서울사람들의 생활모습, 민속신앙 등 메리 테일러가 조선에 살면서 보고 들었던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② 2부 테일러 부부의 서울생활(1917~1922)
앨버트 테일러와 메리 테일러의 만남과 결혼, 서대문 밖 ‘작은 회색 집’에서의 생활, 앨버트 테일러의 고종 국장, 3.1운동, 제암리 학살 사건 취재에 관한 내용이다.
서대문 밖 작은 회색 집(The Little Gray Home) : 일본 요코하마에서 만난 앨버트 테일러와 메리 테일러는 1917년 인도 봄베이(현 뭄바이)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그 해 가을 한국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한다. 그들의 신혼집은 ‘작은 회색의 집’이라고 이름을 붙였으며, 당시 주소로 죽첨정 2정목 187번지(서대문구 중청로7길)에 있었다.

앨버트 테일러의 3.1운동과 제암리 학살 사건 취재 : 1919년 2월 28일 테일러 부부의 아들 브루스 티켈 테일러가 세브란스 병원에서 출생했다. 이때를 기점으로 앨버트 테일러는 세브란스 병원에서 독립선언서를 입수했고 고종국장에 대한 사진을 촬영하였으며, 3.1운동에 대한 기사도 작성했다. 뉴욕타임즈 1919년 3월 12일자에는 출처가 AP(Associated Press)로 표기된 3.1운동 관련 기사가 실려 있는데, 동아일보 1920년 7월 12일자에는 3.1운동 재판과정을 취재하는 외국인을 앨버트 테일러라고 언급했다.
3.1운동을 알리는 편지.jpg▲ 3.1운동을 알리는 편지-편지 마지막 부분에는“지원한 것은 아니지만, 미국 연합통신사 (Associated Press of America)의 한국 통신원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최근까지도 이 일로 매우 바빠서 먼저는 정부 관료들에게 연락하고 또 최근 사망한 한국의 마지막 왕의 국장에 참석하였으며, 그리고 한국의 독립운동을 살피고 그에 대해 기사를 썼습니다. 장례식에 대해 지역신문에 실린 기사를 첨부해 보내드려요.”라고 적혀있다.
 
또한 앨버트는 수원 제암리 학살 사건에 대해서도 취재했다. 일본 영자 신문 더 재팬 애드버타이저(The Japan Advertiser) 1919년 4월 27일, 4월 29일자에는 제암리 학살사건을 일으킨 일본군의 잔악상과, 이 사건에 대해 보고받은 당시 조선총독 하세가와가 관련자 처벌과 재발방지를 약속했다는 내용이 상세히 소개되었다. 앨버트가 남긴 이러한 신문 기사는 앨버트 개인의 활동에 대한 기록으로써만이 아니라, 향후 3.1운동과 관련된 당대 언론 전반의 동향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③ 3부 기쁜 마음의 궁전, 딜쿠샤(1923~1942)
서양식 가옥 딜쿠샤의 연혁과 변천과정, 당시 모습을 소개하고, 이를 중심으로 생활했던 테일러 부부의 행적을 보여준다.
붉은 벽돌의 집, 딜쿠샤(Dilkusha) : 딜쿠샤는 종로구 행촌동에 위치하고 있다. 딜쿠샤는 산스크리트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Palace of Heart’s Delight)’을 뜻한다. 메리 테일러가 인도 북부 러크나우를 여행할 당시 본 현지의 딜쿠샤에서 이름을 따왔다. 딜쿠샤는 1923년에 착공되었는데 당시에는 조선신궁보다 높은 곳에는 건물을 지을 수가 없어서 그보다 낮은 위치에 지어졌다. 딜쿠샤는 지하1층~지상2층 건물로, 지하는 창고로 활용됐고 1층에는 중앙계단을 중심으로 거실, 주방 등이 있었다. 2층도 1층과 마찬가지로 거실, 응접실 등이 있었다.

1926년 낙뢰로 인해 가옥 일부가 파손되기도 했다. 기증 받은 자료 가운데 딜쿠샤 내부 사진앨범이 있다. 이는 메리 테일러가 딜쿠샤에 거주할 당시 촬영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사진으로 거실, 침실, 주방, 서재 등 당시 가옥의 내부 모습을 짐작할 수 있으며, 가구, 장신구 등을 통해 당시 생활모습도 엿볼 수 있다. 이 자료는 딜쿠샤를 복원하고 가옥의 연혁을 확인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테일러 가문사람, 김주사 : 테일러 부부는 25년간 한국에 살면서 서울 사람들 및 서울에 거주하는 외국인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었다. 이들 중 대표적인 인물로는 앨버트 테일러의 사업을 도와주었던 것으로 알려진 김주사(본명 김상언)를 들 수 있다. 그는 고종 때 역관이었으며, 이후 테일러 가문과의 인연으로 테일러 상회와 음첨골 광산 운영에 깊이 관여했다. 그는 조선의 독립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테일러 부부가 일제에 의해 미국으로 추방된 이후 종로 경찰서에서 심한 고문을 당하였고, 이 후유증으로 결국 숨을 거두게 되었다.

④ 4부 일제에 의한 강제추방(1942~1948)
1941년 12월 태평양 전쟁으로 한국에서 강제로 추방된 테일러 부부의 여정과 다시 돌아오기 위한 앨버트 테일러의 노력 그리고 그의 갑작스런 죽음 이후 메리 테일러의 행보에 관한 내용이다.

테일러 부부의 추방 : 태평양 전쟁 발발과 동시에 1941년 12월 조선총독부는 현재 감리교신학대학교에 있는 사우어 하우스(Sour House, 현재 학교 내 역사박물관)에 앨버트 테일러와 언더우드를 비롯해 서울에 거주하는 남자 외국인들을 강제로 감금했다. 메리 테일러 또한 딜쿠샤에 가택 연금되었다. 1942년 5월에 앨버트 테일러가 풀려나자 부부는 외국인 추방령에 따라 한국을 떠나게 되었다.

다시 한국에 돌아온 테일러 부부 : 테일러 부부는 해방 이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던 중 앨버트 테일러는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인해 세상을 떠났다. 평소 한국에 묻히길 원했던 남편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메리 테일러는 1948년 유해를 양화진외국인묘원에 안장하고 딜쿠샤를 둘러 본 후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이번 기증유물특별전 ‘딜쿠샤와 호박목걸이’전은 1917년부터 1942년까지 한국에 거주하였던 테일러 부부의 행적을 밝히고 당시의 모습을 재구성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일제강점기 서울에 거주한 서양인 관련 자료는 이미 많이 알려져 있지만 3대에 걸친 테일러 가문의 자료들, 즉 3.1운동 관련 기사, 딜쿠샤 유물, 금광개발 관련 자료 등은 당시 한국에서 일어난 주요 사건들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제니퍼 L.테일러는 “테일러 가문 및 딜쿠샤 자료는 내가 소장하는 것 보다 한국에서 보존하는 것이 더 의미있다. 이 자료들은 3.1운동을 알린 할아버지 앨버트 테일러의 추모와, 딜쿠샤 복원사업에 활용될 수 있다.”라며 “이번 기증유물특별전을 통해 내가 기증한 자료가 일반 시민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매우 뜻 깊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송인호 서울역사박물관장은 “제니퍼 L. 테일러가 기증한 호박목걸이, 편지, 사진첩, 경성의 도시 사진과 풍경화, 태극기와 공예품들을 통해 일제강점기 당시 경성을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깊은 의의가 있다. 이번 전시회는 시민들이 테일러 부부와 딜쿠샤에 대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증자 : 제니퍼 린리 테일러(1958~ )
1958년 생으로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다. 소노마에서 자랐고, 고등학교를 마친 이후, L.A에서 패션 디자인을 공부하였다. 1979년부터 프랑스로 이동하여 파리에서 모델로 활동하였다. 그녀는 유럽을 기반으로 20년 넘게 다양한 예술활동을 하였다. 2000년에 제니퍼는 미국 뉴욕 맨하탄으로 가서 “Love, Janis” 라는 음악극을 연출하기도 하였다. 2015년 이후로는 싱어송라이터로서, 딜쿠샤 프로덕션 운영자로서, 또 콜라쥬 아티스트로서 예술계의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주윤기자 news-979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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