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강봉균 별세, ‘강봉균 경제론으로 김종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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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봉균 별세, ‘강봉균 경제론으로 김종인과’

강봉균 경제계 풍운아 애증의 역사속으로
기사입력 2017.02.01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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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앤뉴스=박귀성 기자] 강봉균 경제로 김종인과 대립했던 강봉균 전 장관이 별세했다. 강봉균 전 장관은 20대총선서 여당 경제통을 맡았다. 강봉균 전 장관은 당시 야당 당수 김종인 경제민주화론에 맞서 강봉균 - 김종인한국경제의 쌍두마차로 불렸다. 강봉균 전 장관은 특히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극복의 일등공신이었고, 강봉균 사령탑은 외환위기를 무한히 극복했다. 이런 경제의 거목 강봉균 전 재경부 장관이 지난달 31일 향년 74세로 별세했다.
강봉균1.jpg▲ 강봉균 전 장관이 지난 20대 총선 당시 새누리당 선대위원장을 맡으며 야당의 김종인 경제민주화론과 강봉균식 경제정책이 날선 대립각을 세웠다. 강봉균 전 장관은 지난 31일 향년 74세로 별세했다.
 
강봉균 전 장관은 정통관료 출신으로 3선 의원을 지냈고, 강봉균표 경제론은 우리나라 역사의 합리적 중도성향 경제론의 원조로 꼽힌다. 강봉균 전 장관은 자타가 공인하는 경제계 원로로 최근까지도 경제구조개혁과 재정개혁 정책을 핵심 화두로 견지해왔다.
 
강봉균 전 장관은 최근까지도 고향인 군산대 석좌교수, 재정 건전성을 지키기 위해 무책임한 포퓰리즘에 대한 대안을 전파하기 위한 모임인 건전재정포럼의 대표를 맡으며 경제 원로로서 동분서주 활동해왔다. 이렇듯 왕성한 경제계 활동으로 이름을 날린 강봉균 전 장관은 경제계 풍운아였다. 하지만 그런 강봉균 전 장관도 세월의 흔적을 피해가지는 못했다. 강봉균 전 장관은 최근 급속히 악화된 췌장암으로 이날 영욕의 세월을 마감하고 끝내 세상을 떠났다.
 
강봉균 전 장관은 1943년 전북 군산 출생으로, 강봉균 전 장관은 군산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를 거쳐 만학으로 서울대 상학과에 입학해 제6회 행정고시를 거쳐 공직을 봉직하게 됐다.
 
강봉균 전 장관의 이력으로는 경제기획원 경제기획국장을 지냈으며 대외경제조정실장 등을 역임하며 대한민국 경제 정책의 청사진과 밑 그림을 그리는 중책을 전담했다. 강봉균 전 장관은 특히 호남 인사 배제가 극심했던 박정희 정부에서도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역점 정책인 경제개발 5개년 계획입안 작업에 다섯 차례나 등용돼며 한국 경제개발 역사를 직접 쓴 산증인으로 꼽힌다.
 
강봉균 전 장관은 또한 김대중 정부 시절 정부 출범과 동시에 터진 IMF 사태 당시엔 대통령정책기획수석비서관을 맡으며 외환위기를 무난히 돌파했는데, 강봉균 전 장관의 IMF극복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사례로 후대에 기록됐다. 강봉균 전 장관은 이렇듯 우리나라 경제 중책을 맡아 경제통으로 인정 받으면서 경제수석에 이어 재정경제부 장관을 거치며 명실상부한 경제 사령탑 역할을 했다.
 
강봉균 전 장관의 열정은 바로 IMF 위기 여파로 건국 이래 한국 경제가 가장 큰 어려움을 겪던 김대중 정부 시기에 재경부 장관을 지내며 경제 위기를 극복하면서 크게 발휘됐다. 강봉균 전 장관은 외환위기가 발생한 이후 경제수석과 재경부 장관을 지내면서 재벌 개혁, 부실기업과 금융기관 구조조정 등 획기적인 정책을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면서 최단기간 외환위기 극복이라는 신화를 만들었다.
 
이런 강봉균 전 장관은 이후 정계에 입문해 지난 20028·8 재보선에서 고향인 전북 군산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고, 17대 국회의원과 18대 국회의원에도 내리 당선돼 3선을 국회에서 정치인으로 보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로 나섰을 때는 경제 분야 공약을 주도했고, 이후 개각 때마다 경제부총리 후보로 하마평에 끊임없이 오르는 경제통으로서의 기염을 토했다.
 
강봉균 전 장관은 특히 경제 정책슬로건으로 여야가 민심잡기에 나선 지난 20164·13 총선에선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을 영입해 경제민주화론으로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던 더불어민주당에 맞선 새누리당 영입인사로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으면서 김종인 - 강봉균경제 쌍두마차를 이끌기도 했다. 특히 강봉균 전 위원장은 당시 기업 구조조정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한국형 양적완화를 핵심 경제 정책 공약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강봉균 전 장관은 사회 경기 대응을 위해 한국은행에 기준금리 인하와 주택담보대출증권, 산업은행 채권을 직접 인수하는 내용의 한국판 양적완화를 화두로 내던지면서 김종인 전 대표와 경제 정책으로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
 
강봉균 전 장관은 최근까지도 경제 원로로서 언론 등을 통해 내수·수출 동반 둔화, 저성장 고착화 등 경기 난국을 헤쳐 나갈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 지난해 9월에는 2년 임기의 대한석유협회장으로 선임되기도 했다.
 
빈소는 서울 일원동 서울삼성의료원에 마련됐다. 발인은 3일 오전 7, 장지는 전북 군산 옥구읍 가족묘지다. 유족으로는 부인 서혜원(71) 씨와 아들 문선(43), 딸 보영(42)씨가 있다. 고인의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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